-그리워하다, 그리고 아쉬워하다
1990년대 발라드 듀오 녹색지대. 그들의 2집은 이전 1집 ‘사랑을 할 거야’의 성공에 힘입어 발표되자마자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타이틀 곡은 ‘준비 없는 이별’. 앨범이 나오자마자 빠르게 가요 차트 상위권에 오른 이 곡은 이후 수차례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녹색지대의 대표 히트곡이 된다.
그런데 이 노래는 히트한 후 곡에 얽힌 사연이 서서히 알려지면서 또 한 번 주목을 받게 된다. 언뜻 연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하루만 더 함께해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애절한 사랑 노래 같지만, 사실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버지에게 하루만 더 살아달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사부곡이었다고 한다. 그런 곡의 뒷얘기를 생각하며 들으면, 멜로디나 가사나 한층 더 안타깝고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부모를 잃는 슬픔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들 말한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한,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을 부모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특히 남자에게 아버지는 자신이 닮아가야 할 대상이자 또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서 묘한 심리적 관계를 갖는다. 그런 흔하지 않은 관계적 배경에서 형성되는 상실과 이별의 아픔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여러 이별과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당연히 외국에도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와의 이별을 다룬 노래들이 있다. 특히 서두에 꺼낸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과 매우 흡사한 사연을 지닌 노래가 있는데, 심지어 장르도 록발라드로 아주 유사하다. 바로 미국의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드림시어터의 ‘Another Day’다.
오직 하루, 그가 아버지에게 바란 것
드림시어터는 1985년 첫 결성되어 이듬해부터 공식적으로 드림시어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온 무려 결성 40년차의 베테랑 밴드다. 이들은 프로그레시브 메탈 계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곡들을 다수 발표한 전설적인 밴드인 동시에, 보컬부터 연주자까지 기술적으로 최고의 완성도를 가진 뮤지션으로 꼽힌다.
이미 밴드의 실력 자체가 어마어마한데다 히트곡도 많은 팀이라 록을 즐겨듣는 사람, 아니 어느 정도 관심만 있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 밴드인데, 멤버 중 베이시스트인 존 명이 한국계로 알려지면서 그 인연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 인지도나 팬층이 두터운 편이다.
이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야말로 완전히 음악밖에 모르는 모범 뮤지션으로도 유명하다. 메탈 밴드라면 멤버 한 명쯤은 있을 법도 한 약물중독, 알콜중독 등의 스캔들이 전혀 없거니와 심지어 담배도 거의 피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멤버 대부분이 다른 취미 없이 오로지 연주 연습이나 음악 공부에만 매달린다고 한다. 화려함에도 거칠고 반항적인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 이들의 음악적 색깔은 일부 이런 그들의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도 영향을 받안 듯 보인다.
Another Day는 이들이 1992년 발표한 앨범 ‘Images and Word’에 담긴 곡이다. 빠르고 화려한 속주를 자주 선보이는 그들에게서 쉽게 보기 힘든 록 발라드인데, 우리나라 록 발라드 매니아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사는 제발 힘을 내어 하루라도 더 살아달라. 지금은 가야 할 때가 아니니 다른 날을 찾아라, 정도의 메시지를 많은 팝송들에서 볼 수 있는 시적이고 비유적인 어휘들로 그려내고 있다. 이 곡의 가사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존 페트루치가 썼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었는데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쓴 가사였다고 한다. 이 곡은 뮤직비디오도 아버지와 아이가 함께 노는 모습을 답고 있어 애절함을 더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앨범이 제작된 후 끝내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이후 존 페트루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또 한 번 곡으로 만들어 4집 앨범에 수록했는데, ‘Take Away My Plan’이라는 곡이다.
닿을 수 없는 어딘가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존 페트루치가 Another Day에 하늘로 떠날 준비를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았다면, 이와는 완전히 다른 곡으로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인연을 노래한 가수도 있다. 에릭 클랩튼의 1998년 곡, ‘My Father’s eyes’다. 에릭 클랩튼이 어린 아들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먼저 떠나 보내고 ‘Tears in Heaven’을 만든 사연은 무척이나 유명하다. 그 곡 이후 몇 년이 지나 발표된 ‘My Father’s eyes’는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신과 세상을 떠난 아들의 관계까지 연결하는 철학적인 곡이다.
어려서 조부모 손에 자란 에릭 클랩튼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 노래는 그렇게 만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눈을 통해 아들을 만나고, 아버지가 나를 보는 마음을 통해 내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생각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중간에 놓인 나의 관계를 연결하는 스토리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오랜 음악 인생, 수많은 절정을 맛본 그는 현재의 지점에서 아직도 찾지 못한 진리, 혹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막막함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는 것으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가사에서는 끝내 그에게 어떤 답이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눈을 매개로 본 적 없는 아버지, 너무 일찍 떠난 아들, 그리고 홀로 남겨진 나의 운명과 인연의 얼레를 느끼며 어딘가 허무하고 안타까운 듯한 마음을 쏟아낸다.
음악적 성취는 전설이지만, 패티 보이드와의 유명한 스캔들을 비롯해 다소 문제적 천재로 불리던 그. 하지만 이런 노래들을 들으면 생각보다 가정, 가족에 대한 마음은 여느 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