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설립 시 법 개정 난관에 업계 반발도 높아
-서비스 부문 경쟁력 갖추기 쉽지 않아
올해 초 생명보험협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상조산업 진출을 피력했다. 시장 한계에 부딪힌 생보사의 미래 먹거리로 요양 사업과 실버 케어를 비롯해 ‘캐시카우’로 거론되는 상조를 눈여겨 본 것이다. 때마침 금융위원장이 취임일성으로 내세웠던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검토되면서 보험을 비롯한 금융사의 신사업 자회사 진출이 가능할 것이란 예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상조업계와 통신사 등 보험사가 눈독 들이는 산업 저마다의 반발이 큰데다 상조업의 경우 대부분이 중소기업으로 ‘골목상권’ 침해라는 의견이 백중세로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에 힘을 쏟는 현재, 은행은 알뜰폰 사업에 진출을, 생보협회는 상조산업에 진출을 타진해왔다. 그러나 두 업종 모두 중소사업자가 대부분으로 산업 생태계의 몰락을 야기하는 한편, 대기업들의 독점 체제에 따른 부작용이 거론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먼저 금융사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알뜰폰 업계의 경우, 이미 수차례 반대 시위를 통해 반대 의사를 행동으로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금융기관의 알뜰폰(MVNO) 사업을 허용하는 정부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은행들이 알뜰폰 사업에 진출할 경우 기존 중소사업자들이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앞서 정부는 금융산업의 디지털 전환 촉진 등의 명분으로 지난 2019년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며 갖가지 특례를 제공한 바 있다. 이에 경실련은 이러한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실련은 이같은 정책으로 인한 은행들의 알뜰폰 사업 진출이 시장 성장 및 활성화가 아니라 중소사업자들의 몰락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이러한 진출 사례를 바탕으로 또 다른 골목상권 침해도 예고했다.
즉, ‘골목상권’ 침해가 주된 이슈다. 통신 3사의 독과점 체제가 공고한 기존 시장 뿐만 아니라 알뜰폰 시장에도 통신 3사의 자회사 등 대기업이 진출해있는 상황에서 금융권이 자본력을 앞세워 진출한다면 가뜩이나 고전 중인 중소알뜰폰 사업자의 설 자리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경실련은 “금산분리 완화로 은행 부수업무에 알뜰폰 사업 등이 포함되면 KB국민은행에 이어 나머지 시중은행들과 금융기관들도 줄줄이 진입할 것”이라며 “금융권의 알뜰폰 사업 진출은 시장 활성화 보다는 개인정보의 독과점화 및 상업화, 대기업 중심의 시장 재편, 은행의 건전성 리스크만 키울 것이다”로 꼬집었다.
상조산업 진출, 골목상권 침해 논란 피해가기 어려워
금융사와 알뜰폰 시장 간의 입장차가 명확한 가운데, 생명보험협회 역시 상조산업 진출을 허용해달라는 의견을 정부에 제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후 한국상조산업협회 등 상조업계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던 생보협회 측은 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별다른 의견을 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캐시카우’로 언론 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는 상조산업은 실제론 ‘고객 선수금’을 임의대로 운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엄밀히는 ‘캐시’가 쌓이는 업종이라 보기 어렵고, 회계특성상 매출액의 발생시점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려 생보협회를 제외한 실제 보험업계에선 오랜 시간 이미 상조산업에 대한 간접경험과 시장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던 만큼, 도리어 자회사 진출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생보협회와 보험사 간의 속내가 다르다는 것이다.
생보협회의 신사업 진출은 해당 업계로선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상품이 한계에 부딪혔고, 손보업계보다 낮은 수익성에 더 이상의 성장이 요원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눈여겨 보고 있던 요양 사업도 별도의 법 개정 등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상조산업에 진출하는 것은 더더욱 무리수로 보인다. 무엇보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오랜 시간 동안 코로나19로 많은 소상공인, 중소기업이 무너진 상황에서의 국민정서와도 부딪힌다.
특히 상조업계는 극 상위권의 몇몇 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영세한 규모를 이루고 있고, 그러한 상위권 업체 중에서도 더 이상의 신규영업 없이 서비스 제공만 주력하는 곳이 존재할 정도로 ‘쉬운’ 업종이 아니다. 즉, 상조산업은 겉보기엔 ‘캐시카우’처럼 보이나 내부의 톱니바퀴가 쉼없이 굴러가는 상당히 치열한 산업인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시기에 보험사의 진출은 다수의 중소사업자의 몰락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히 신중론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대형보험사의 진출 시 산업 전반의 신뢰 제고가 이뤄지고 서비스의 질 개선 등에 대한 기대감도 표하고 있지만, 상조산업이 쌓아올린 노하우를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더욱 큰 것이 복수의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는 이미 과거 ‘상조보험’이라는 상품의 형태로 곁가지로 진출했다가 얼마 가지 않아 철수했던 몇몇 보험사의 시도들이 그 방증이다.
또한 보험사의 진출로 인해 중소사업자들이 무너지게 되면, 또 다시 대규모 소비자 피해에 따른 혼란도 예상된다. 이와 함께 상조산업은 숱한 법 개정과 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시작해 구조조정을 이제 막 마무리한 사실상 걸음마 산업이다. 급격한 생태 변화보단 앞으론 육성의 단계를 거쳐야 할 산업이다.
생보협회-보험사 간 입장도 갈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정작 보험사들은 생보협회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상조산업 진출엔 아직까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10여년 전까지 보험업계가 상조산업과 연계상품을 출시하고, 실제로 사업 진출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실제 진출 시 성공여부가 확실치 않다”라며 “우선 업계 반발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고, 수익성이 기대치에 못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물론 신사업 진출은 앞으로 필수적인 과제로, 이로 인해 상조산업에 진출을 실제로 하게되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우선 개선해야 할 규제가 많고, 상조사업자들과의 의견차도 좁혀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보험업계가 기존 상조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상조업계 반발을 중화시킬 것이란 예견도 나오고 있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다.
현재 상조업계는 보험업계의 시장 진출을 저지하는 분위기지만 영세하거나 더 이상 영업이 불투명한 업체 일각에서는 자사 ‘매각’에 대한 기대심리가 한껏 부풀어져있다. 이들 대부분은 보험사가 더 많은 자금을 갖고 있을 것이란 이유로 실제 가치보다 수 배에 달하는 매각대금을 요구하고 있고, 정상적인 기업 운영의 논리상 인수거래가 원만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오히려 보험업계에서는 부풀려진 비용을 감당하면서 기존 상조회사를 인수하기보단, 본인들이 보유한 인프라를 활용해 직접 진출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생보협회에서는 올해 가진 몇 차례의 간담회 자리에서 중소기업 죽이기가 아닌 기존 상조사를 인수하는 방안으로 진출하겠다는 입장을 표한 바 있지만, 실제 보험사의 입장이 모두 투영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렇다고 보험사의 직접 진출도 만만친 않다. 상조산업은 넓게 보면 보험업과 대금의 지불 방식이 유사하지만 상조산업의 핵심은 ‘상조상품의 제공’에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러한 실물 서비스 영역은 보험업계의 경험치가 전무하다. 과거에 등장했던 ‘상조보험’ 역시 정작 상조서비스 특약은 ‘외주’로 상조업체에 일임했던 만큼 직접 진출 시엔 전문성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즉, 보험사가 상조사업을 시작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과거의 방식대로 기존 상조업체를 행사 파트너로 두고, 운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기존 상조업체들이 쌓아올린 수십 년간의 노하우를 확보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이미 기반을 잡은 상조업체를 인수해 자회사를 차릴 경우, 앞선 이유들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들 수 있다는 점에서 딜레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실제 몇몇 보험사들은 상조산업에 진출해서 얻어갈 이익이 크지 않다고 평가하는 곳이 적지 않다.
여기에 현재 한국상조산업협회 등 상조 사업자 단체들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추진하고 있고, 또한 통계청의 표준산업분류코드에 상조업을 등재하기 위한 의견을 제출하는 등 산업 보호에 주력하고 있어 진입장벽도 점점 두터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생보협회, 토탈 라이프케어 도약 위한 컨설팅 발주
한편, 생보협회는 이러한 여건과 상조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조산업 추진 의지를 쉬이 거두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생보협회에 따르면 당면한 생보업계 위기 극복을 위해 정희수 협회장의 의지로 컨설팅 발주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보협회는 올 초 발표한 ‘토탈 라이프케어 산업’ 도약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사적연금 활성화를 추진하고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혁신과 문제가 되고 있는 요양·상조 등 시니어케어 진출도 활성화한다는 방침인데, 이를 위한 컨설팅을 의뢰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요양업 진출에 대한 효과 및 문제점을 다루는 연구용역도 진행 중에 있다. 생보협회가 어떤 제스쳐를 보일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