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스포츠는 인간이 향유하는 가장 놀랍고도 신기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만약 스포츠가 없는 세계에서 살던 사람이나 외계인이 인류의 스포츠 문화를 처음 접한다면 정말 이해하지 못할 문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공, 또는 기타 간단한 도구를 두고 벌이는 단순한 놀이가 어마어마한 경제 효과를 일으키고, 때로는 유혈 사태를 낳기도 한다. 생경한 문화권의 이해할 수 없는 생활방식에도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그들만이 공유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스포츠는 그 행위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릴 때면 지구촌의 시선이 이 거대한 스포츠 행사로 집중되고, 누군가는 하나의 경기를 보다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러한 스포츠에 죽음이라는 사건이 결합한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한 하나의 놀이에 불과한 스포츠와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사건은 사실 외형적인 면만 봐서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과 연계된 무수히 많은 스포츠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듣고, 추모하기도 하며, 그 죽음과 관련된 하나의 경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포츠에는 행위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체격조건과 놀라운 경기력에 대한 경이감,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변수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스토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최고가 되기 위해 몰입하는 스포츠맨들의 숨겨진 이야기,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뛰는 그들만의 동료애, 여기에 이러한 요소들을 하나의 산업적 요소로 융합하는 마케팅까지 스포츠의 이면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으며, 우리는 이런 것들에 놀라운 매력을 느낀다. 스포츠는 단순히 특정한 규칙 속에서 벌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인 것이다. 

전설이 된 복싱 만화

만화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표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뒷골목 인생을 벗어나 복싱 챔피언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 죠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내일의 죠’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내용이다. 내일의 죠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죠의 독백은 고독에 몸부림치며 맹목적인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그의 심정을 보여준다. ‘껍데기만 타다 꺼져버리는 어설픈 젊음’이 아닌, ‘비록 한 순간이라도 새빨갛게 타올라 하얗게 재가 되어버리는’ 삶을 택함으로써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그의 독백은 수많은 남성 독자들의 가슴에 열정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 1968년부터 약 5년여간 연재된 내일의 죠는 현재까지도 일본 만화계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복싱 만화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 작품이다. 누적 발행부수 2000만부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일으키며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으며, 이후 TV 및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국내에서도 ‘허리케인 죠’라는 제목으로 TV 방영된 바 있다.

도쿄 빈민가의 부랑아로 살아가던 고아소년 야부키 죠는 어느 날 왕년의 복싱선수 출신인 단베이 노인을 알게 된다. 죠의 복싱선수로서의 자질을 알아본 단베이는 그에게 복싱을 가르치기 시작하지만, 범죄와 방탕한 생활에 물들어 있던 죠는 소년원에 수감되고 만다. 소년원에서 조는 복싱선수 출신의 운명적인 라이벌 리카이시를 만나게 되고, 난생 처음으로 그에게서 패배를 경험한다. 이를 계기로 복싱에 모든 것을 걸게 된 죠는 결국 단베이의 도움을 받아 리카이시와 대결하기 위해 나아간다. 마침내 리카이시와 운명의 대결을 하게 된 죠. 그러나 그 대결에서도 결국 죠는 패하고, 리카이시는 체중 감량 후유증과 경기 중 받은 충격으로 죽고 만다. 리카이시의 죽음은 죠에게도 큰 충격이었지만, 이후로도 죠는 수많은 강자들을 물리치며 세계챔피언에 도전하게 되고, 최선을 다해 싸운 뒤 링에서 죽고 만다.

극단의 열정, 그 지독한 순수성

내일의 죠는 처절하고 열정적이다. 복싱은 달리기를 제외하면 가장 단순한 룰을 가진 경기 중 하나다. 인간과 인간이 일대일로 마주하고 주먹으로 승부를 가리는 경기. 혹자는 야만성으로 인식할 정도로 한없이 단순한 그 순수성이 복싱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이러한 복싱의 성격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바로 죠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뒷골목 인생이 복싱을 시작한 것은 복싱의 매력에 빠져서가 아니다. 리카이시라는 일생의 라이벌을 만나면서 리카이시 자체가 하나의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리카이시에게 승리를 거두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 심지어 리카이시가 죽게 되면서 그 목표는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된다. 이후에는 세계 챔피언을 목표로 하지만, 독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에게 진정한 목표는 리카이시 뿐이었음을. 그래서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그의 모습을 기대한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죠는 챔피언이 되는 대신 리카이시와 같이 경기를 마치고 죽고 만다.

빈손으로 태어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왔지만, 결국 그 하나뿐인 목표마저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죠의 모습은 독자를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의 마지막 모습에 단순한 안타까움이 아닌 경이로움으로 박수를 보낸다. 비굴하게, 혹은 구질구질하게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에 연연하기 보다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태워버린 그의 모습에서 극단의 열정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스포츠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가 있다. 이 많은 서사물들은 대부분 가정환경, 부상 등의 역경을 딛고 결국 최고가 되거나 그에 버금가는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낸 이들의 성공 스토리를 그린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행복해지며, 삶에 대한 희망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내일의 죠는 다르다. 이 작품은 우울할 정도로 처절하다. 스토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그렇고, 죠라는 인물 자체가 그렇다. 내일의 죠에서 죽음은 이 작품만의 처절함을 완성 짓는 장치로 작용한다. 독자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죠의 모습에서 극도의 상실감을 느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일반적인 스포츠 서사물이 ‘하면 된다’, 혹은 ‘어떤 상황에도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작품은 거칠고 처절한 삶 그 자체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 죠의 모습은 쉽지만은 않은 세상에 온몸으로 부딪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판타지를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