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자리에는 경복궁의 가장 큰 건물인 근정전과 정문인 흥례문 앞을 가로막으며 1926년 일제가 세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한 주요 행정부처가 자리를 잡은 중앙행정관청으로 ‘중앙청’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바로 이 중앙청 땅 밑에 경복궁 벙커가 있다.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육군 소장의 군사정부가 그 이듬해 중앙청 지하를 파 내려가서 안보회의 시설로 만든 거대한 벙커 공간과 비밀 통로들을 만들어 놨다.
훗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국가 비상사태 발생을 대비해 핵폭탄 공격을 견딜만한 벙커로 개조해서 정부요인의 비상대책회의와 기밀문서보관 등 전시대비 업무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벙커는 지하 11m아래에 있으며 철근 콘크리트로 2m 두께의 천장에 350m길이의 터널을 지나 25cm 두께의 철문 4개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그 크기는 1600평에 달한다.
현재 이 벙커는 국립고궁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경내에 있다. 지금의 국립고궁박물관 건물은 애초 옛 중앙청의 부속건물(후생관)이었다. 1995년부터는 중앙청 철거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됐고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이후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경복궁 지하에 비밀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이 벙커는 1983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개조된 이후 2005년부터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로 쓰이고 있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유물 8만8530점이 경복궁 지하에 잠들어 있는 셈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평소 굳게 닫혀있는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텅 빈 복도가 나타난다. 벽에는 각종 배관이 있고 곳곳에 보이는 100m, 200m, 300m표시를 보면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 수 있다. 300m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 다시 50m쯤 더 가면 '보물 창고'의 문이 나타난다. 박물관 직원은 물론 관장조차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공간인 박물관의 심장으로도 불리는 수장고 입구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현재 지하 수장고 16곳을 포함해서 총 19곳의 수장고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경복궁 지하에 위치한 수장고는 종이·목제·도자·금속 등 유물의 재질·유형에 따라 나뉘어 총 8만 8530점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그중에는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부터 철종(재위 1849∼1863)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비롯한 국보 4건, 보물 27건 등이 있다. 서울시 문화유산까지 포함하면 지정·등록유산만 54건, 세부적으로는 3천639점에 이른다. 한 마디로 보물 창고다.
무엇보다 지상의 춥고 더운 날씨와 달리 쾌적한 온·습도가 유지되고 있다. 지하에 건립된 벙커 특성이 작용한 영향이다. 10수장고의 경우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국왕이 왕비나 왕세자 등을 책봉할 때 내리는 문서인 교명 등 628점이 보관 중인데 1759년 영조가 정조를 왕세손에 책봉할 때 내린 어보 일괄 유물은 20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만큼 완벽한 상태이다.
다만 수장고마다 유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비좁은 상태다. 박물관 수장고 포화율이 이미 160%로 한계치를 넘은 탓이다. 처음부터 수장고로 설계되지 않은 터라 층고가 낮아 규모가 큰 왕실 유물을 보관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가마나 마차, 현판 등 사이즈가 큰 왕실 유물은 간신히 보관하고 있는 상태”라며 “유물들은 매번 보존관리나 연구가 필요한데 이동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 여주에 임시 수장고가 있지만 유물 관리 측면에서 위급상황 대처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