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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 영화 ‘오펜하이머’
 
이정석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3/09/25 [23:12]

 

-통제권을 빼앗긴 죽음의 신, 그의 필연적 고뇌

 

영국 유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향수병에 시달리던 청년 물리학도 오펜하이머는 닐스 보어와의 만남을 계기로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고자 핵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가 된다. 하지만 이후 미국 해군 소장 출신이자 원자력위원회 의장까지 역임한 루이스 스트로스 등과의 갈등으로 나락까지 떨어지게 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 영화 오펜하이머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미국 태생의 천재 물리학자이자 2차대전을 종결시킨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과 원자력위원회 청문회 시점에서 다뤄지는 오펜하이머의 시련, 그리고 오펜하이머가 겪은 그 시련의 진실이 밝혀지는 스트로스의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3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며 오펜하이머의 인생 전반을 다룬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무기를 만들어낸 과학자의 혼돈과 죄책감, 그로 인한 고통을 다루게 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과연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단순히 이 지점에서 오펜하이머의 끔찍한 번뇌뿐 아니라 그의 인생,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거치며 겪었던 다양한 심리와 갈등을 다루며 한 인간에 보다 깊이 있고 입체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미 육군 대령 레슬리 그로브스의 제안으로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부임하게 된다. 목표는 이미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독일에 앞서 핵폭탄을 완성하고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 미 정부는 이 목표를 위해 오펜하이머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그가 사랑하는 뉴멕시코주에 사실상 한 마을에 가까운 연구소를 만들고,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가족과 거주하며 연구에 몰두한다.

 

리더인 오펜하이머의 임무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연구적으로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로지 목표를 성공시키기 위한 일념으로 군인과 과학자들이라는 이질적인 이들 간의 갈등 요소를 제어하고, 연구와 관련된 과학자들의 논쟁과 책임 분담도 중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안을 이유로 군당국은 오펜하이머에게 각자 임무에 따라 과학자들이 구획화되어 일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제때 성공시킬 수 없다며 적절히 상황을 조율해야 한다.

 

다른 의미로 현실이 된 연쇄 핵폭발

 

​연구 중 오펜하이머는 자칫 핵폭발이 일어날 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쇄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며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고 받고 아인슈타인에게 실제 그럴 수 있는지 계산해줄 것을 부탁한다.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오펜하이머로서는 이를 계기로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원자폭탄이 완성된 시점은 이미 독일이 항복하고, 일본이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패전이 확실시되는 상황.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꼭 사용해야하는지 회의를 갖고, 그로브스에게 원폭 실행 여부가 결정되면 연락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원폭이 끝난 뒤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당혹스러웠지만 속내를 숨기고 연구원들 앞에서 그들의 성과를 자찬한다. 리더, 책임자인 그는 이 끔찍한 결과물을 완성해낸 중심의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중적인 자세를 취해야 했다. 동료들의 성과를 격려하면서도, 공포를 느끼고 더 이상 핵 확산이 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 그러나 미 정부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역사적인 소련과 미국의 핵 경쟁이 시작된다. 하나의 실질적인 폭발에서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됐던 연쇄 핵폭발은 그렇게  시대의 흐름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모든 것을 만들었지만, 실제 그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폭탄이 완성된 순간 그의 손을 떠나고 말았다. 학창시절 사회 수업 시간 자주 듣던 인간소외를 온몸으로 마주한 그의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원자폭탄을 경험한 오펜하이머는 소련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소폭탄 개발을 고려하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한다. 그러나 맨해튼 계획에 함께 했던 과학자이면서 특히 수소폭탄에 집중하고 있던 에드워드 텔러는 원자폭탄이라는 성과를 독점하고 자신의 연구를 제한하려 한다며 오펜하이머와 등을 진다. 

스트로스는 과거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렸던 오펜하이머의 전력을 이용해 그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는 데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상황을 조종한다. 그리고 끝내 원자력 위원회 청문회를 통해 그 계획에 성공한다. 여기에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스트로스의 매우 사소하고도 사적인 복수심이 작용했지만, 텔러를 비롯해 메카시즘 시대에 현실과 타협한 주변인들의 분노도 크게 한 몫 한다. ​​

 

과연 과학자는 윤리적, 도덕적, 정치적 책임에서 온전히 벗어나 오로지 과학적 성취로서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면 되는 것인가. 혹은 과학자라면 본질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성공시키는 것,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결과로 나타날 윤리적, 도덕적, 정치적 문제에 우선해야 하는가.  

 

오펜하이머가 겪는 시련을 보면서 단순히 한 사람의 주어진 일, 역할이 그 자체로만 평가받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혹은 당연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더 이상 더러운 꼴, 괴로운 상황을 버티지 말고 그냥 미국을 떠나거나 원자력 관련 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다 이유가 있다며 끝까지 버티고자 했던 오펜하이머의 태도는 바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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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9/25 [23:12]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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