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다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냉장고가 흔치 않았다. 그래서 얼음을 파는 얼음 가게가 동내마다 있어서 여름이면 얼음을 사다 먹던 기억이 난다. 얼음 가게에는 파란색 문에 빨간 글씨로 큼지막하게 ‘어름’이라고 써놓은 냉동 창고가 있었다. 얼음 가게 아저씨가 톱으로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쓱쓱 썰어 새끼줄로 묶어주면 더운 날씨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음을 들고 신나게 집으로 달리던 그때가 아스라이 생각난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선 일부 부유층만 고가의 수입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었다.
RCA,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상표가 붙은 냉장고는 너무 비싸 서민들은 구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시 미군부대 PX를 통해 몰래 반출된 냉장고가 18만원에 거래 되었는데 그때의 대졸자 초임이 1만 1000원이었으니 그 값이 얼마나 비쌌는지 짐작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냉장고는 1965년 LG 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서 출시한 눈표 냉장고였다. 출시 당시 이 소형 냉장고의 가격은 8만 600원으로 외국 제품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했지만 서민들에겐 여전히 금값이었다. 1968년 매일경제 기사를 보면 당시 우리나라에 보급된 냉장고는 5만대로 600가구에 한 집 꼴이었다.
냉장고가 없는 집은 얼음을 채운 파란색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보관했고 석간신문의 생활정보란에서는 냉장고가 없는 집의 음식 보관 요령을 알려줄 정도였다. 1970년대 들어서 금성사가 2도어 냉장고를 출시해 인기를 끌자 삼성전자도 냉장고 출시에 박차를 가했다. 관련 기술은 점차 발전해 1981년에는 3도어, 1986년에는 5도어 냉장고까지 등장했다.
조선 시대에는 날씨가 추워지면 서울 한강 변에 사는 사람들은 근심이 커졌는데 바로 얼음 채취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조선 시대엔 한양과 지방의 세금 체제가 달랐다. 지방은 토지세, 군역, 지역 특산품 등을 징발 당했지만 한양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이런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들에게는 주택세와 한양이라는 도시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임무가 할당됐다. 그 중 한강유역 그 중에서도 한강진과 양화진 사이를 경강이라고 했는데 이곳 주민들은 얼음을 캐서 얼음 창고까지 운반하는 일을 맡아야 했다.
이처럼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부역이 장빙역인데 여기에 동원된 백성과 군사들을 장빙군 이라고 한다. 추위 속에 얼음을 잘라내고 운반해야 하는 장빙역이 워낙 고된 일인지라 세종과 세조는 술과 음식을 내려 장빙군들을 독려했다. 한강의 얼음은 네 치(12cm)두께로 언 후에야 채취한다. 채취한 얼음은 동빙고와 서빙고에 보관했고 궁궐 내에도 두 곳에 내빙고를 설치해 왕실에서 사용하는 얼음을 공급했다. 정조 때에는 얼음 운반의 폐단을 줄이고자 내빙고를 양화진으로 옮겼다. 동빙고는 한강변 두뭇개,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에 있었고 서빙고는 지금의 용산구 서빙고동 둔지산 기슭에 있었다.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쓰였고 서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인 음력 5월 보름부터 7월 보름 동안 종친과 고위 관료, 퇴직 관리, 활인서의 병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의금부의 죄수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한강은 일제강점기에도 여전히 주요한 채빙 작업의 공간이었다. 1920년대는 경성천연빙주식회사와 선천연빙주식회사가 한강에서 매년 2~4만톤의 얼음을 채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한강이 오염되자 1955년부터 얼음 채취가 금지된다. 한강 얼음의 채취와 식용 사용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얼음이 여전히 불법으로 유통되자 정부는 1957년 모든 얼음 공장의 식용 얼음을 색소로 물들이라는 희한한 지시를 내리게 된다. 한강 얼음과 구분하기 위함이었는데 노란색으로 물들인 공장의 얼음은 식용으로서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났고 한강의 얼음은 1960년대에도 여전히 유통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얼음에 대한 애착이 정말 대단하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무엇일까? 음료도 아니고 라면도 아니고 바로 컵얼음 이다. 2020년 편의점 3사의 컵얼음 판매량은 놀랍게도 약 4억1,700만개라고 한다. 2014년 400억원 대였던 국내 컵얼음 시장 규모는 2016년 1500억원, 2018년 2200억원, 그리고 2020년엔 2300억원 대 규모로 성장했다. 2021년 컵얼음 시장 규모는 24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해마다 겨울이면 꽁꽁 언 한강에서 썰매타고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풍광을 영영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내 유년 시절, 새끼줄로 꽁꽁 묶인 얼음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