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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기 작가의 사진이 있는 이야기] 한 여름 밤의 유토피아 을지로 노가리 골목
 
한남기 동국대학교 평교원 교수   기사입력  2019/06/07 [18:58]

 

전국에 걸쳐 유명한 노포가 모여 있는 명물 거리가 많다. 서울에는 신림동 순대골목, 신당동 떡볶이골목, 장충동 족발골목, 저동 골뱅이골목 등이 유명하다. 이런 골목들 중에 유독 한여름 밤이 되면 다른 계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소위 ‘노가리 골목’이라 알려진 이 곳은 ‘을지 페스타’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을지로 3가역 4번 출구에서 뒤쪽 골목으로 이어지는 샛길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다. 올해는 이상 고온 현상으로 인해 아직 5월인데 서울에는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졌고 강원 동해안은 열대야가 발생했다. 그래서일까 올해는 이 곳 노가리 골목은 일찍부터 붐비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형성된 이 골목은 2015년에는 서울미래유산 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5월 10일~11일에는 제5회 ‘을지로 노가리 호프 축제’, 일명 ‘을지로 노맥축제’가 열렸다. 축제는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 되었는데 축제 기간 중에는 3500~4000원에 판매하던 생맥주 500㏄를 1000원에 즐길 수 있었다.

 

2013년 6월 1회부터 개최된 이 축제는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로, 2016년에는 지역 사정에 의해 두 차례 운영을 중단했다. 이 축제에는 16개의 업소로 구성된 을지로 노가리 호프 번영회에서 주관한다. 서울 중구 에서는 이 곳 골목 일대를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고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골목상권 활성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2017년 5월부터 이 곳 골목을 지역상권 활성화 구역으로 지정하여 옥외 영업을 허용했다. 그 결과 노가리 골목은 을지로를 대표하는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골목의 원조는 1980년 11월 이 곳에 OB베어 생맥주 체인점, 서울 2호점으로 오픈한 ‘을지 OB베어’이다. 창업주인 황해도 출신 강효근 사장은 고향에서 해마다 김장때면 김치와 함께 버무려 먹던 명태의 맛을 잊지 못해 생맥주집을 개업하면서 명태 새끼인 노가리를 안주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 당시 강씨가 개발한 고추장 소스는 노가리와 궁합이 잘 맞아 맥주 안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이 골목이 유명해지는데 한 몫을 했다. 1989년에는 이 골목의 두 번째 호프집 ‘뮌헨호프’가 문을 열었다. 그때 여기는 거의 모두 다 인쇄소 골목들 이었다. 납기를 맞추느라 밤샘 근무도 많았고 일요일에도 근무를 했다. 퇴근 후 즐기는 시원한 맥주 한잔과 노가리 안주는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의 삶의 활력소였다.

 

1980년에 동양맥주가 생맥주를 생산하면서 ‘OB베어스’라는 브랜드로 생맥주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여 큰 호황을 누렸다. 맥주에 ‘생’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지만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는 아니고 살균한 맥주였다. 지금도 생맥주집의 맥주는 살균해서 효모를 죽인 맥주이다. 생맥주집을 칭하는 ‘호프집’ 이란 명칭은 맥주 원료로 사용하는 호프(HOP)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호프는 넓은 장소를 의미하는 HOF에서 유래되었다. 그 당시 OB 베어스에서 판매하던 생맥주 가격은 500cc가 500원, 1000cc가 1000원 이었다. 여기서 인기 있던 안주는 30원, 50원, 100원짜리로 손바닥 반만 한 비닐로 포장된 땅콩, 건포도, 오징어채 등이었다.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한 생맥주 시장에 노가리가 등장 했으니 그 인기는 실로 폭발적이었다.

 

 

노가리는 명태의 어린 새끼를 뜻하는데 그 크기는 20cm내외이다. 숙취를 없애려고 북엇국을 끓여 먹듯이 맥주를 마시면서 노가리를 함께 먹으면 숙취가 안 생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맥주가 팔리는 곳은 바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다. 1980년대 생맥주 500cc 한잔에 500원, 노가리 한 마리에 100원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찾는 곳이다. 가장 맛있는 맥주의 온도는 여름에는 4도 겨울에는 6도 이다. 그래서 맥주는 물론이고 맥주잔도 냉장고에 넣어 여름에는 4도로 보관한다. 노가리 골목에서 현재 가장 규모가 큰 업소인 만선호프에서는 하루 평균 생맥주 50케그가 판매된다. 500cc 잔으로 2000잔이다. 맥주는 온도도 중요 하지만 온도에 따라 적절한 양의 탄산을 주입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한다. 노가리도 그냥 구워 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펴서 기계로 다시 한 번 눌러서 부드럽게 만든다. 옛날 그대로 연탄불에 노릇하게 구워진 노가리는 번데기 통조림 탕과 같이 먹으면 금상첨화이다.

 

해가 지고 퇴근 시간이 되면 이 곳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변신을 시작한다. 차량이 통제된 골목길에는 간이 테이블이 펴지고 플라스틱 의자가 놓인다, 골목에는 밤마다 ‘야장’이 펼쳐진다. 휘황한 전등불을 밝히고 줄줄이 골목 가득 늘어선 테이블 마다 시원하게 이슬 맺힌 500cc 맥주잔이 놓이고 요즘 ‘치맥’의 선배격인 노가리가 등장하면 한 여름 밤의 ‘노맥축제’가 시작된다. 옛날 100원 하던 노가리가 이제는 1000원이 되었지만 하루의 고단함을 한 잔의 맥주와 함께 깔끔하게 씻어내는 정겨운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언제부터인가 플레이스로 부상한 을지로 노라기 골목은 요즘말로 ‘힙지’가 틀림없다. 20대의 젊은이부터 70,80대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웃음이 가득한 이 곳은 한 여름 밤의 유토피아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영원히 변치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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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07 [18:58]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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