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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기 작가의 사진이야기 /우리나라 종묘사직을 아시나요
한남기 교수 기사입력  2018/09/19 [10:00]
▲      ©상조매거진

 

TV에서 방영되는 사극을 보면 “전하, 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살피소서”라고 하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종묘사직(宗廟社稷)이 무엇을 뜻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종묘사직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와 죽은 후에 왕으로 추대된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왕가의 사당이고 사직은 국가에서 백성의 복을 빌기 위해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을 모신 제단이다.

 

조선 왕조는 경복궁을 창건 하면서 좌묘우사(左廟右社)의 법도에 따라 경복궁의 좌측에는 종묘를, 우측에는 사직단을 세웠다. 이렇게 경복궁의 좌측과 우측에 위치하게 된 이유는 음양의 원리에 따라 양의 기운이 충만한 하늘을 상징하는 곳에 왕의 선조들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고 땅을 상징하는 음기가 있는 곳에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마련했다.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한 종묘는 조선 왕조의 사당으로 태조 이성계는 개성에 있던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른 뒤로 줄곧 도읍지를 새로 정하고 종묘를 건립하는 일에 매진하였는데 그는 한양천도 후에 경복궁보다 먼저 1395년에 종묘를 건립했다. 태조 이성계는 왕으로 즉위되고 12일 만에 자신의 4대조에게 목왕, 익왕, 도왕, 환왕으로 왕의 칭호를 올리고 그들의 비에게도 각각 효비, 정비, 경비, 의비라는 존호를 올렸고 종묘에 가장 먼저 자신의 4대조를 모셨다. 창건 당시 종묘는 총 7칸의 방으로 지어 졌는데 태조, 정종, 태종을 모시고 나니 세종 때 이미 7칸이 모두 채워지게 된다.

 

그래서 세종은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먼저 지어진 정전 옆에 영녕전 이라는 사당을 새로 짓고 여기에 이성계의 4대 선조의 신위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나서 정전 내에 위폐를 모시는 칸을 계속 늘려가서 결국 마지막에는 19칸에 이르게 되었다. 이 곳 정전에는 19명의 왕과 30명의 왕후가 모셔지게 되는데 왕후의 숫자가 많은 것은 중전이 여러 명 있었기 때문이다. 정전은 동양에서 가장 길이 가 긴 목조 건물로 그 웅장한 자태가 보는 이를 압도 한다.

 

이에 비해 규모가 작은 영녕전에는 왕이 될 수 있었으나 되지 못한 이들과 단종 같이 왕위에서 쫓겨났다 나중에 다시 복위되는 왕을 비롯해서 비운의 왕들이 모셔져 있다. 영녕전에는 15명의 왕과 17명의 왕후가 모셔져 있고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도 여기 모셔져 있다. 현재 조선 왕가의 사당인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사직단은 조선시대 때 하늘에 제를 올리는 곳으로 동쪽에는 사단을 서쪽에는 직단을 설치했다. 각 단은 정방형에 높이 1m, 면적 22평 규모로 각 면을 돌아가며 지대석, 면석, 갑석을 차례로 쌓아올렸다. 사직단은 한양도성 서쪽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의 한 줄기가 내려온 지형과 조화 되도록 조성됐기 때문에 정확하게 남북을 향하지 않고 약간 동남쪽으로 틀어져 있는데 이는 도성 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이러한 배치는 엄격하게 남북 방위를 지키며 조성되는 중국의 사직단과 차이를 보인다. 고종 때까지만 해도 단마다 사방에 3단의 돌계단이 남아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사단에서는 토지의 신인 국사신께 제를 올리고 직단에서는 곡물의 신인 국직신께 제를 올렸다. 죽은 왕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 종묘라면 산 사람들을 위해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 바로 사직단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농사의 풍년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던 시절에 왕이 친히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주관하며 한 해 농사 풍년을 기원하던 곳이다.

 

이런 사직단은 임진왜란 때 한 번 소실됐고 1908년에는 일제의 강압으로 아예 폐쇄 되기도 했다. 1911년에는 사직단 부지가 아예 총독부로 넘어갔고 일제는 1922년에 사직단 주위에 도로를 내고 1924년에 사직단 일원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인왕산 자락에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던 사직단은 그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됐다. 해방 후 1962년에는 도시 확장으로 정문이 뒤로 이전 됐고 1970년대에는 북쪽에는 종로도서관과 파출소가, 서쪽에는 수영장 등이 건립돼 주변 환경이 다시 크게 훼손됐다.

 

마침내 2015년 문화재청은 사직단 복원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2027년까지 진행될 이 사업을 통해 사라진 13개 건물을 복원하고 3개 동을 보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복원 사업이 끝나고 나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와 달리 100년을 훌쩍 넘는 긴 세월 동안 제 모습을 읽고 방황하던 사직단이 우리 곁으로 다시 오게 된다. 하늘과 교감하던 그 곳이 다시 옛모습 그대로 오롯이 복원되면 그동안 반쪽 이었던 우리나라 종묘사직이 비로소 완전체로 하나가 되니 하늘도 감동해 우리나라에 축복을 내릴 것이다.

기사입력: 2018/09/19 [10:00]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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