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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 사랑과 죽음이 담긴 세 개의 이야기-가수 이지훈
이정석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6/07 [10:15]


얼마 전 JTBC 예능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시즌 2에 배우 이지훈이 등장했다. 지금은 배우라는 타이틀이 익숙한 그이지만, 정식 음반만 6집을 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한 가수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가 들고 나온 슈가송은 바로 ‘왜 하늘은’. 1996년, 말 그대로 혜성과 같이 등장해 고교생 가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그의 데뷔곡이다.

 

1996년은 우리나라 가요계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해이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이돌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그룹 HOT가 이 해에 데뷔했으며, 1집부터 자신들의 자작곡으로 앨범을 채운 고교생 싱어송라이터 힙합 그룹 언타이틀도 이 해에 첫 선을 보였다.


트로트풍의 댄스곡으로 HOT보다 한 발 앞서 가요 프로그램 차트 1위를 석권했던 영턱스클럽의 ‘정’도 이 해에 발표된 곡이었다. 과거 10대들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와 아이들, 그룹명부터 ‘아이돌’을 표방하고 나선 남성 듀오 아이돌도 있었지만, 진정한 아이돌 전성시대는 바로 1996년부터라고 봐야 마땅하다. 10대들이 직접 10대의 우상이 되고, 적극적인 팬덤을 형성하며 한국 가요계를 이끌어간 시점이 바로 이 때이기 때문이다.

 

1997년의 젝스키스와 SES, 1998년의 핑클을 위시로 NRG, 태사자, 베이비복스까지 숱한 그룹들이 이들에 이어 등장했고, 이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던 한국 가요계는 아이돌에 의해 굴러가는 시장으로 급격히 변화했다. 이러한 시장 상황 속에서 이지훈은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데뷔 당시 고등학생 2학년으로, 당시의 고교생 가수 붐을 이끄는 일원이었다. 그런데 장르가 달랐다. 솔로 발라더라는 포지셔닝은 댄스 그룹이 다수였던 다른 아이돌 가수들과 확실한 차별화를 이뤘다. 1997년 데뷔한 여가수 양파와 이지훈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무엇보다 그의 데뷔곡인 ‘왜 하늘은’은 신해철이 이끌던 록밴드 넥스트의 멤버였던 김영석이 작곡한 록발라드였으며, 소재마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었다.

 

데뷔 당시 이지훈은 미소년의 외모와 탁월한 고음 실력을 갖춘 가수였다.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강렬한 고음 외에도 기교 대신 꾸밈 없이 깔끔한 창법, 그리고 애절한 목소리는 10대 고교생이라는 그의 캐릭터와 어우러져 순수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만의 강점이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진 그의 가창력은 듣는 이, 특히 타깃 연령층인 10대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곡의 애절함은 배가됐다.

 

‘왜 하늘은’은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앞두고 오열하는 남자의 심정을 담고 있는 곡이다. 곡의 화자는 이렇게 널 보낼 수 없다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끝까지 함께 있겠다고 말한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내 손을 잡으라고 애원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과의 마지막 여행을 이야기하는 화자는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안타까워하며, 연인을 데려가려는 하늘을 원망한다.


모든 이별은 슬픈 감정을 내포하지만,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그 슬픔이 배가된다.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뜻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별. 서로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끊어지는, 그리고 다시는 복구될 수 없다는전제를 둔 인연은 여타 이별과는 비교될 수 없는 슬픔이자 충격이다.

 

심지어 그 주인공이 여린 10대의 남자라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와 같은 세대라면 감정 이입의 강도는 더욱 세진다. 여느 아이돌이 보여준 10대들만의 당당함, 또래의 공감을 일으키는 발랄함이 아니라, 역으로 그들만의 감수성 극단을 자극하는 그의 창법과 노래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와 함께 그를 스타덤에 올려놨다. 이지훈은 여기에 더해 활발한 예능활동을 통해 노래만큼 우울하고 슬픈 이미지뿐만 아니라 10대 특유의 천진함과 밝은 모습도 놓치지 않았다. 이런 그만의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이 곡은 그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천애, 다시 한 번 1위를 안긴 노래

 

1997년 2집 발표와 함께 이지훈은 본격적으로 록커의 길을 선언한다. ‘왜 하늘은’이 음악적으로 록발라드의 형태를 갖췄지만 부드럽고 서정적인 정서가 강했다면, 2집 타이틀곡 ‘이별’은 조금은 거친 록발라드의 감각을 더욱 부각시킨 곡이다.


이 곡 역시 1집만큼의 성공은 아니지만, 가요 순위 프로그램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제법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이듬해 발표된 3집은 1, 2집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두며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그가 추구하던 록발라더로서의 남성성은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배가됐지만, 대중적 성공은 이와 반대로 이어졌다.

 

이후 2000년, 이지훈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절친인 HOT 강타가 작곡한 ‘천애’라는 곡을 타이틀로 4집을 발표한 것이다. R&B, 힙합, 댄스 기반의 음악을 해왔던 작곡가 강타의 색깔은 이지훈의 ‘천애’에도 고스란히 담겼고, 결과적으로 록발라드, 남성성을 지향했던 이지훈만의 음악세계는 무뎌졌다. 개인적으로는 록발라더의 길을 선언한 이후 끝내 그 길을 고수하지 못한 그의 선택에 아쉬움을 느꼈지만, 결과적으로 이 곡은 그에게 다시 한 번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의 영광을 안겼다.

 

공교롭게도 그에게 다시 한 번 1위를 안긴 이 곡 또한 죽음을 은유한 곡이었다. ‘왜 하늘은’이 죽음을 앞둔 연인에 대한 감정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연인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그린다. 화자는 하얗게 식은 연인을 보며 더 이상 온기를 느낄 수 없음에 슬퍼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어디 있더라도 목소리를 들려달라며 애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살아갈 수 없다면 내가 그곳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냐며 연인이 떠난길을 따라가고 싶다는 절망감을 내비친다. ‘왜 하늘은’에서 적어도 사랑하는 연인과의 교류할 수 있는 슬픔을 다뤘다면, 이 곡은 아예 그녀와 단절된 상황에 느끼는 절망을 다룬다. ‘왜 하늘은’이 안타까움과 애절함의 정서라면, ‘천애’는 비통함과 참담함마저 느껴지는 격정적인 감정이다.

 

그의 음악세계는 죽음과 인연이 깊다. ‘천애’의 후속곡이었던 ‘Angel’ 또한 죽음을 주제로 다룬다. 이번에는 자신의 죽음을 앞둔 화자가 연인을 남겨두고 떠나갈 준비를 하는 내용이다. 연인의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연인의 죽음을 맞은 시점,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맞는 시점까지 사랑과 죽음을 매개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세 축을 모두 곡으로 다룬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마니아적이 아닌, 지극히 대중적인 발라더로서는 더욱 그렇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이 세 개의 극단적인 슬픔을 그 상황에 맞게 훌륭하게 소화해낸 가수라는 점이다. 지금은 음악계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그에게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다.

기사입력: 2018/06/07 [10:15]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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