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1일 헐리우드의 유명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미국 경찰에 따르면 사인은 우울증 등에 의한 자살로 보인다.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사인이 자살이라는 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그의 이미지와 따뜻한 미소를 기억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화려한 톱스타보다 오랜 기간 ‘영화’라는 일상적인 문화생활에 늘 함께했던 이웃이나 친구 같은 이미지가 강했던 그이기에 그의 죽음으로 인한 사람들의 슬픔은 더욱 큰 듯하다.

영화에 특별하게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로빈 윌리엄스의 얼굴과 이름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비디오테이프가 우리 여가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 로빈 윌리엄스는 성룡과 함께 신작만 발표하면 공식 비디오 대여 순위 1위를 차지하던 최고의 스타였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그의 대표작들은 ‘미세스 다웃파이어’, ‘쥬만지’, ‘후크’, ‘토이즈’, ‘바이센테니얼 맨’ 등 아이들을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들이 많았다. ‘알라딘’이나 ‘로봇’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인상적인 목소리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동시에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굿모닝 베트남’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와 같은 작품에서는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휴머니스트의 면모를 보이면서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지난 약 30년의 시간 동안 그는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기억하고 사랑하던, 일종의 전 세계적인 ‘국민배우’와 다름없었다.

선의 얼굴에 익숙한 대중 배우

1951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로빈 윌리엄스는 TV 드라마와 코미디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뒤 1987년 ’굿모닝 베트남’을 통해 헐리우드에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된다. 이후 지금까지 그가 남긴 작품은 100편에 이르며, 골든글로브 5회, 미국배우조합상 2회, 그래미상 3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1회 수상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3회 노미네이트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배우다. 그러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때 코카인에 중독되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하는 등 스크린 밖에서는 자기만의 힘겨운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로빈 윌리엄스는 웃음을 통해 희망을 주는 배우의 이미지가 강하다. 어린이들도 볼 수 있는 가족 영화부터 감동의 휴머니즘 영화까지 그는 많은 영화에서 긍정적인 얼굴, 늘 미소 짓는 얼굴로 희망을 전달해왔다. 그러나 역시 그의 연기를 말하자면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여장 연기와 같은 코믹 연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혼 후 전처가 돌보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할머니로 변장을 하고 가정부로 전처의 집에 취업하는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그의 코미디적 재능을 제대로 보여준다. 완성도 높은 코미디 연기로 전달하는 가족의 소중함과 가장의 따뜻한 마음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영화도 제법 흥행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이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코미디언, 그리고 그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유쾌한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러나 로빈 윌리엄스는 동시에 코미디가 아니어도 충분히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배우였다. ‘굿모닝 베트남’, ‘죽은 시인의 사회’, ‘패치 아담스’, ‘굿윌헌팅’ 등의 영화를 떠올려보자. ‘굿모닝 베트남’의 그는 베트남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라디오 아침 방송을 진행한다. 전쟁에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비극 속에서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말하는 남자. 비극의 현장에서 유쾌한 목소리로 ‘굿 모닝~ 베트남!’을 외치는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기억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한 명문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가르치고,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현재의 행복을 찾으라고 외치는 선생님의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그의 교육이 학교 방침과 맞지 않아 결국 학교를 떠나게 되었을 때, 그의 제자들이 수업 중 책상 위에 올라가 그를 향해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외에도 자신도 상처를 갖고 있지만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패치 아담스’, 고독한 천재의 멘토를 연기하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굿윌헌팅’ 등 그는 전쟁터, 입시지옥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홀로 희망과 용기를 이야기해왔다.



천의 얼굴로 스크린을 지배하다

유쾌한 동네 아저씨에서 휴머니스트 멘토에 이르기까지 주로 선한 배역을 맡아왔지만, 로빈 윌리엄스는 의외로 악역에서도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작품이 ‘스토커’와 ‘인썸니아’다. ‘스토커’에서 그는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평범한 아저씨의 얼굴을 하고 뒤에서 독특한 광기로 스토킹을 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스토커’ 속에서 보여준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그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 배역을 맡기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완벽했다. 그 동안 쌓아온 로빈 윌리엄스만의 일상적이고 따뜻한 이미지는 스토커의 기괴한 모습에서마저 알 수 없는 연민을 느끼게 한다.


‘인썸니아’에서는 상대역인 알파치노와 두뇌 싸움을 펼치는 살인마의 모습을 연기했다. 헐리우드 최고의 성격파 배우 알파치노와의 연기 대결에서 그는 지능적이고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으로 조금도 밀리지 않는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실제 부딪치는 장면 보다 서로 떨어져 벌이는 심리 싸움으로 유지되는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은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핵심이었다.

이처럼 로빈 윌리엄스는 단순히 유쾌한 코미디 연기로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배우라는 이미지로만 한정하기에는 너무도 큰 능력을 지닌 배우였다. 때문에 그의 죽음은 더 큰 안타까움을 낳는다. 우리가 그 동안 흔히 알고 있던 그의 이미지로 한 편으로는 친한 친구나 지인을 잃은 것 같은 슬픔을 주기도 하며, 최근 특히 많은 연기 변신을 보여줬던 그이기에 앞으로 그의 색다른 연기 변신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마음에 더욱 애석해진다.

수많은 배우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우리는 많은 부분 그들의 연기에 위안을 받고, 때로는 삶의 일부를 함께 하기도 했다. 로빈 윌리엄스는 이런 배우의 역할, 우리에게 배우가 주는 의미에 가장 근접했던 배우라고 생각된다. 때문에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배우 중에서도 그는 가장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