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 상조업계의 선수금 관리를 둘러싼 비판이 제기됐다. 티몬·위메프 사태와 동일시 하면서 상조업계의 선수금 보전비율(50%)이 부족한 것처럼 발언하는가 하면, 업계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 일부 업체의 유용 사례를 빌미로 공정위의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는 상조업계가 이미 구축한 소비자 보호 장치와 기존 규제의 실효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렸다.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380억원의 선수금을 사모펀드에 투자해 유용하거나 43억을 횡령해 잠적하는 등 상조업계에서는 선수금을 허술하게 관리한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며 “금융업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머지, 해피머니상품권, 티메프 다음에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 생각해볼 때 상조업계가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먼저 돈을 내고 나중에 상조라는 결과물을 받기 때문에 먼저 돈을 냈는데 그 사이에 망가지면 그 피해는 어떻게 할꺼냐”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이어 “할부거래법상 선수금 의무예치 비율이 있다. 50%인데, 그 나머지 운용에 대해서는 규제가 없다. 상조입장에서는 규제가 없는데 이 자금을 마음대로 유용하고 싶은 그런 유혹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근 KDI가 보고서를 통해 제안한 예금보험공사를 통한 사후보호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상조업계, 충분한 소비자 보호 장치 마련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업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국회의 몰이해에 따른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선수금의 부채 계상 등 상조업계의 회계 특성이나 기존 소비자 보호 장치, 그간의 성과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선수금 예치비율이 ‘절반’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라 토로했다.
이와 관련, 우선 상조업계는 소비자의 선수금 보호를 위해 이미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앞서 언급된 바 와 같이 상조회사는 선수금의 50%를 의무적으로 금융기관, 공제조합 등에 예치하고 있으며, 이 자금은 소비자가 요청할 경우 언제든 반환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소비자가 계약을 해지하거나 업체가 폐업한 경우에도 예치된 금액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바로 반환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낮고, 나머지 50%의 보상에 대해서는 ‘내상조 그대로’와 같은 대안 서비스를 통해 피해를 차단할 수 있어 사실상의 위험요소를 모두 배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서는 상조회사가 보전하는 선수금 비율을 50%에서 더 상향해야 한다는 듯한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이는 오히려 상조회사의 경영 악화와 서비스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고돼야 한다.
상조회사는 소비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남은 50%의 자금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경영활동을 통해 소비자들은 물가 인상의 영향에서 벗어나 가입 당시의 상조상품 가격 그대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선수금 보전 비율이 상향된다면 상조회사의 유동성 악화는 물론, 가격 인상과 상조상품의 물가보전이라는 강력한 ‘메리트’의 상실, 나아가 업계 전반의 경영 불안정성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따라서 무작정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상조회사들의 자율 규제와 기존 소비자 보호 장치를 더욱 견고하게 운영하는 등 현실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조 가격표시제 도입 논의, 실질적 효용성보다 소비자 혼란 초래
이처럼 올해 국정감사 역시 상조업계의 노력이나 현행 정책의 성과를 무시한 채 규제만을 주장하는 ‘마녀사냥식’ 공격만이 주를 이뤘던 가운데, 이 같은 악성 여론이 실제 관련 법안 추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공정위의 경우 이번 국감에서 불거진 선수금 보전비율 상향에 대해선 상조업계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나 공제조합사를 대상으로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한 담보비율 상향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이와 함께 본래 상조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던 상조산업 진흥법에 대해 이를 주관하는 기획재정부가 시장 외부의 악성 여론을 더욱 의식한 듯 상조업계의 새로운 규제를 여럿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 사례가 탁상행정 논란이 불거진 ‘가격표시제’ 도입 논의다. 이와 관련 지난 9월 정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장례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장례서비스 가격표시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소비자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가격표시제는 장사시설을 보유하지 않은 장례서비스 업체도 장례용품과 서비스 가격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으며, 기존 장례서비스와 더불어 상조시장에도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실질적인 효용성보다는 형식에 치중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이미 소비자들은 장례용품과 서비스 가격 정보를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각종 장례상품의 가격대와 기본 정보를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가격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추가적인 가격표시제를 강제하는 것이 과연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상조상품의 경우, 다양한 장례 절차와 부가서비스가 패키지 상품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비자가 가입 후 장시간에 걸쳐 상품을 보유하는 특징이 있다. 경조사를 미리 소액을 납부하면서 대비하는 상품의 경제성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개별 품목의 가격을 명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대다수 입장이다. 한 상조업체 관계자는 “상조상품은 일반적으로 10년 이상 장기 계약 형태로 판매되며, 매년 변동하는 물가와 서비스 가격을 고려할 때 개별 품목의 가격을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올해 가입자, 내년 가입자, 작년 가입자마다 상품 가격이 다 다르게 표기되는 것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지 않겠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업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소비자 보호와 투명성 강화의 필요성에 동의하지만 제도의 필요성을 이유로 업계의 특성을 그 무엇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상조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일방적으로 시행되는 규제가 아닌, 업계 현황을 반영하고 소비자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